본지가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해 야심차게 시작한 ‘서울만큼 잘하는 지역병원’의 다섯 번째 순서는 한림대학교 동탄성심병원(이하 한림대동탄성심병원)입니다. 2012년 개원한 한림대동탄성심병원은 한림대의료원 산하 의료기관 중 가장 먼저 AI(인공지능) 기반의 첨단의료환경을 구축, ‘스마트(samrt)병원’으로 탈바꿈하며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이성호 병원장과 함께 이 병원의 스마트시스템을 체험해봤습니다. <편집자 주>
설 연휴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일상으로 복귀한 첫날(1월 28일). 여느 때 같으면 평범했을 병원입구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매우 분주했다. 기자도 방문기록부를 작성한 뒤 열을 재고 마스크를 건네받았다.
“아유, 정신없으시죠. 그래도 오늘만큼은 제가 든든한 길잡이가 돼 드리겠습니다.”
마스크를 막 착용했을 때 이성호 병원장이 인사를 건넸다. 병원투어가 괜찮을지 우려하자 이럴 때야말로 병원 곳곳을 더 꼼꼼하게 점검해야한다면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단 마스크는 계속 착용하라고 당부했다.
■AI생체인식시스템, 눈 맞춤만으로도 환자 알아보다
“환자등록번호 입력하시고요. 네, 오늘은 이 일정대로 움직이시면 됩니다. 휴대폰으로 알림문자 갔죠? 원내에 편히 계시다가 대기순서에 맞춰서 오세요.”
이성호 병원장이 기자에게 처음 소개한 것은 병원입구에 위치한 ‘AI생체인식시스템’. 마침 한 환자가 키오스크 앞에서 화면을 바라보자 바로 환자등록번호 입력화면이 떴다. 환자는 순식간에 본인확인을 마치고 병원일정을 확인한 뒤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한림대의료원은 지난해 7월 인공지능(AI)기술을 통해 얼굴, 지문 등 생체정보로 환자를 확인하는 생체인식시스템을 도입, 환자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개시했다. 지금은 다양한 곳에서 생체인식기술을 체험해볼 수 있지만 의료현장에서의 구현은 한림대동탄성심병원이 최초다.
“사전에 얼굴과 지문을 등록한 예약환자가 병원에 도착해 키오스크화면에 인증하면 자동으로 외래접수가 이뤄집니다. 그러면 외래진료순서부터 검사까지 당일 일정이 화면에 쭉 펼쳐집니다. 이 내용은 환자의 휴대폰으로 그대로 전송돼 병원 어디에서나 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죠.”
이 시스템을 통해 환자들은 더 이상 막연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뿐더러 병원에 있는 동안 최대한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기자가 개인정보유출을 걱정하자 옆에서 환자들의 AI생체인식시스템 이용을 돕고 있던 김민수 재무팀장이 발 빠르게 답변했다.
“환자가 등록한 생체정보는 원본 그대로가 아니라 수치로 암호화돼 저장됩니다. 이들 정보는 개인정보보호정책과 규정에 따라 의무기록과 동일한 시스템으로 안전하게 보호됩니다.”
이성호 병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AI생체인식시스템에 등록된 환자정보는 약 6060건이며 사용건수는 6800건이다.
이성호 병원장은 “의료현장에서의 첫 시도치고는 괄목할 만한 성과”라며 “올해는 이 시스템을 수납, 주차등록과도 연계시키고 응급실, 병동 출입관리 등에 확대 적용해 환자안전과 편의를 보다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I음성인식 의무기록시스템, 수술실에서 첨단을 만나다
AI생체인식시스템이 환자의 막연한 기다림을 줄였다면 두 번째로 만난 ‘AI음성인식 의무기록시스템’은 의료진의 업무효율을 쑥 올렸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은 인공지능 기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셀바스의 AI의 인공지능 의료녹취 솔루션을 도입, 2018년 11월 5일부터 수술실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AI음성인식 의무기록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다. 이 역시 국내 첫 시도다.
통상 의사들은 수술이 끝나면 전반적인 수술과정과 특이사항을 손으로 쓰게 돼 있다. AI음성인식 의무기록시스템은 이러한 과정을 ‘말’로 한 번에 끝내는 것. 외과 김종완 교수의 안내로 이 광경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김종완 교수가 인공지능 앱에 연결된 블루투스이어폰에 대고 수술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한국어와 영어(의학전문용어)를 섞어 말하는데도 내용이 그대로 입력되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김종완 교수는 “3개 진료과 의료진 6명이 약 4개월간 시스템을 준비하면서 의료현장에서 쓰이는 1만2000개의 문장을 녹음하고 인공지능시스템으로 하여금 이를 학습하게 했다”며 “한 달 후 성과를 살펴보니 음성인식률이 90%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김종완 교수는 수술 후 휴식시간은 물론 진료·연구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게 돼 이전보다 한층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게 됐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은 이 시스템을 향후 외래진료실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진료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시간을 줄이고 환자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쳐다볼 수 있으니 잘만 정착되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계획을 현실로 구현하는 날이 내심 무척이나 기다려졌다.
■하이브리드수술실, 7개월 만에 뇌동맥류수술 100례 돌파
“이왕 수술실에 들어오셨으니 이곳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규모부터 압도적인 이곳은 환자 및 의료진의 이동 없이 진단부터 시술, 수술이 모두 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일명 ‘하이브리드수술실’이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은 지난해 2월 경기 남동권 최초로 하이브리드수술실을 열고 뇌동맥류, 동정맥기형, 모야모야병 등 다양한 뇌혈관질환치료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뇌동맥류수술은 개소 7개월 만에 100례를 돌파했다.
무엇보다 하이브리드수술실 한가운데 놓인 혈관조영기가 압권이었다. 뇌동맥류수술 100례 돌파의 주역 신경외과 박정현 교수가 “안 그래도 이 기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며 자세히 설명했다.
“뇌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보통 인터벤션시술(피부에 작은 구멍을 낸 후 카테터 등을 삽입해 혈관을 치료하는 것)을 시행하는데 이때 혈관손상이 심하거나 예상치 못한 혈관기형이 발견돼 급히 수술해야하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영상의학과에서 인터벤션시술을 한 다음 환자를 수술실로 옮겨야했는데 지금은 이 기계로 바로 혈관상태를 확인해 수술까지 할 수 있게 됐지요. 뇌혈관치료는 시간이 생명인 만큼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박정현 교수가 덕을 많이 보고 있다는 혈관조영기는 환자의 혈관상태를 3D로 확인할 수 있으며 최고의 해상도를 자랑한다.
환자가 눕는 수술용 테이블 역시 업그레이드해 혈관조영기의 위치에 따라 좌우 또는 상하이동이 가능하다. 집도의가 원하는 방향으로 환자의 머리위치를 움직일 수 있어 개두술을 통한 혈관봉합 시 매우 유용하다는 설명이다.
박정현 교수는 “미국에서는 이미 척추질환에도 하이브리드수술을 적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뇌혈관질환을 넘어 다양한 질환에 하이브리드수술이 적용되는 날이 오도록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누구에게나 열린 교육의 장 ‘동탄시뮬레이션센터’
하이브리드수술실을 끝으로 원내투어를 마치고 나니 이성호 병원장이 “또 하나의 보물장소가 있다”며 기자를 병원 밖으로 이끌었다.
안내를 받아 간 곳은 서울 경기권에서 유일한 임상술기교육기관인 ‘한림대의료원 동탄시뮬레이션센터(이하 센터)’다.
지난해 6월 첫발을 내디딘 센터는 전문의, 전공의, 인턴, 간호사 등이 임상투입 전 고기능 시뮬레이터(인체모형)를 이용해 각종 시술과 수술을 연습할 수 있는 곳이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의료진은 물론 지역사회 의료계종사자와 의대를 꿈꾸는 중고생, 일반시민에게까지 두루 교육기회를 제공한다.
센터의 교육프로그램 기획·관리는 심호연 간호사가 책임진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중환자실에서 20년간 근무한 베테랑인 심호연 간호사는 “응급상황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뿐 아니라 일반시민 역시 보건의료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센터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었다. 특히 실습실은 벽지색깔부터 손 씻기, 문 개폐시스템까지 수술실과 다를 바 없어 더욱 집중하고 긴장하게 됐다.
실습을 위한 시뮬레이터(인체모형)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센터는 ▲외상환자 ▲중환자 ▲신생아환자 ▲소아환자 등 총 4대의 시뮬레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모두 출혈이나 신체절단과 같은 응급상황을 실제와 똑같이 연출할 수 있는 고기능 시뮬레이터. 실제로 만져보니 피부감촉마저 사람과 똑같아 깜짝 놀랐다.
심호연 간호사는 “시뮬레이션별로 다양한 응급상황을 연출해 현장감과 대응능력을 제대로 익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술 및 시뮬레이션룸에서는 복강경과 내시경시술, 로봇수술을 연습할 수 있다. 기자는 심호연 간호사의 도움으로 복강경 시뮬레이터를 직접 체험해봤다. 주변조직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수술부위에만 정확히 접근해야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아 애를 먹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교수들도 연습을 위해 많이 오는 편입니다. 현장근무만으로도 지칠 법한데도 오히려 ‘힐링’이 된다고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며 사직하려는 생각을 접는 간호사들도 많습니다.”
올해는 센터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응급외상학회부터 미군부대, 일반기업, 의대진학희망 학생들까지 다양한 인원이 센터의 교육인프라를 체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구성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일군 스마트병원
투어를 마친 후 병원장실에서 못다 한 얘기를 나눴다. 스마트시스템이 원내 곳곳에 잘 스며든 것 같다고 하자 이성호 병원장은 “모두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지향하는 스마트병원은 단순히 시설 좋은 병원이 아닙니다. 조직원들의 업무효율을 높이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목표입니다. 모든 조직원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면서 스마트시스템 조성에 힘을 보탰습니다.”
스타트업의 기술지원도 큰 원동력이 됐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은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스타트업을 발굴, 지속적으로 협약을 맺고 있다. 올해는 별도로 AI팀을 발족해 의료진과 스타트업이 더욱 긴밀하게 머리를 맞댈 예정이다.
이성호 병원장은 “병실 내의 장비를 음성으로 통제할 수 있는 텔레커뮤니케이션시스템과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한 혈압측정 등 입원환자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스마트시스템도 본격적으로 구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역사회와의 소통에도 열심이다. 실제로 한림대동탄성심병원은 동탄시뮬레이션센터 외에도 화성지역 내 복지관 등과 협력해 퇴원환자의 건강한 일상복귀를 돕는 등 지역사회와 동화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화성은 물론 오산, 평택, 용인 등 인근지역에서도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도록 교통문제 해결에도 힘쓸 생각입니다. 시설만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자 합니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이 진정한 스마트병원으로 활짝 날개를 펼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