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의 명대사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늙는다. 늙는 건 죄가 아니지만 서러워진다. 일을 하고 싶어도 육체가 따라주지 않는다. 더구나 우니라나는 내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과거에 비해 ‘노인복지’에 관한 관심과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이에 정부도 노인들의 자립과 안전한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복지제도 강화를 서두르고 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현재 많은 복지 시범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진실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포퓰리즘 형식으로 남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할 때이다. 졸속처리라고 할 만한 대표 시범사업 3개를 톺아봤다.
■요실금 치료 지원사업, 2차 공모 겨우 4개 지자체
‘요실금 치료 지원사업’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 요실금 치료 지원사업은 노인들이 건강과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요실금 관련 의료비와 의료기기 사용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복지부가 기존과 다른 ‘의료기기 운영방식’과 ‘남녀방 별도 설치 항목’ 등을 추가로 제정하면서 올해 6월 말 진행된 1차 공모에서 참여 지자체 개수가 확 줄었다. 기존 16개에서 4개 지역으로 축소된 것.
취재 결과 6월 21일 열렸던 온라인 설명회에서 다수의 지자체 보건소 담당자들은 의료기기 운영방식에 관해 지자체 실정에 맞게 운영할 수 있게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비치’만을 고정하는 경직된 행정지시를 내렸다.
요실금 치료지원 대상은 이동이 어려운 고령층이다. 또 이미 보건소에서는 요실금 의료기기를 대여한 바 있다. 복지부가 국민을 믿지 못해 대여가 아닌 비치만 고집한 것으로 판단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녀방을 구분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에 복지부는 공간 확보에 필요한 인테리어 자금을 본 사업비의 5% 이내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2차 공모에 참여한 전남 나주시와 충남 부여군의 경우 1000만원을 지원받는데 공간 확보를 위해서는 50만원만 사용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사용이 불가능한 것이다.
또 하의탈의를 통해 치료가 이뤄지면 남녀방을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허가받은 의료기기 중 하의탈의방식으로 요실금치료를 진행하는 의료기기는 단 하나뿐이다. 다른 의료기기는 남녀방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 이러한 행정지시는 특정 의료기기업체와 유착된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요양병원 간병지원 시범사업, 결과없는 예산 축소
요양병원 간병지원 시범사업 역시 위기이다. 정부가 2025년 시범사업예산을 기존 85억원에서 24억원을 줄여 61억원으로 책정했기 때문이다.
시범사업에 대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예산을 줄인 경우는 거의 없다. 시범사업은 대부분 중간결과보고서를 받은 후 성과에 따라 예산배정이 이뤄지기 때문.
복지부는 긴축재정 기조 속에 요양 간병지원 등 일부 복지사업 예산은 삭감됐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범사업은 환자를 선정하는 방식이 근본문제이다. 애초에 환자 대상을 의료최고도, 의료고도환자로 입구를 좁게 해놓고 신청자가 별로 없게 만든 것. 또 대상 환자들을 한 병실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다른 환자를 받을 수 없게 했다.
게다가 판정을 책임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관련 인력 부족으로 판정까지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 우리나라 엘리트 관료들이 머리를 모아 정책을 수립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과연 몰랐을까.
결국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한 의료기관은 공단에 ‘참여가 어렵다’고 문의를 했다. 하지만 올해까지만이라도 시범사업을 유지해 달라고 할 것이 뻔하다. 26일 진행된 대한요양병원협회 추계학술대회에서는 제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이미 복지부는 시범사업 전 진행한 위원회에서 협회를 한 차례도 부르지 않았다. 애초에 현장의 목소리를 배제한 것이다.
결국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간병비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눈가리기 아웅하는 형식으로 이번 시범사업을 진행했다는 지적이다. ‘간병지옥’ ‘간병살인’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부는 과연 간병비를 제대로 잡을 생각이 있는지 의문이다.
■방문진료 시범사업, 참여율 고작 2.3%
5년 차에 접어든 방문진료 시범사업 참여율이 2.3%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 현황’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참여율은 2.3%로 나타났다. 오는 11월부터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이 병원급 의료기관으로 확대되고 중증환자 본인부담금은 준다.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의료 접근성 확대를 위해 지역 내 의원급 의사가 직접 방문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범사업이다. 의과는 2019년 12월부터, 한의는 2021년 8월부터 시작됐다. 의사는 치매·본태성(원발성)고혈압·욕창궤양, 한의사는 연조직 장애, 중풍 후유증 등을 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방문진료는 소아·공휴·야간 등 각종 가산금이 적용되지 않는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외래진료시간에 방문진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참여해도 실익이 없다. 거의 ‘의료봉사’의 개념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지자체에서 홍보가 부족해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홍보가 어려운 형국이다. 시범사업이기 때문에 광고도 어렵고 의료진이 광고를 할 때 ‘방문진료’ ‘왕진’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것.
복지(福祉)는 행복한 삶을 뜻한다. 특히 노인은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중요한 존재다. 그들이 편안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설립 이유 중 하나다.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설립된 ‘보건복지부(保健福祉部)’. 언제까지 책상 앞에서만 정책을 꾸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