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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취해소음료는 ‘술 깨는 약’이 아니다
숙취해소음료는 ‘술 깨는 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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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는 직함을 가진 이후 연말이 되면 연일 이어지는 술자리로 속편할 날이 없다. 건강분야 기자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약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편이지만 오늘 아침에는 불편한 속을 부여잡고 약국으로 향했다. “약사님, 술 깨는 약 좀 주세요.”

작은 환이 10여개 쯤 든 약포지와 숙취해소음료 한 병을 준다. 꾸역꾸역 삼키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아무 의심 없이 많은 사람들이 숙취해소음료를 ‘술 깨는 약’이라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 흠칫 술이 깬다. 당연한 말이지만 컨디션, 모닝케어, 여명808 등의 이름을 달고 시중에 나와 있는 숙취해소음료는 ‘식품’이지 ‘약’이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제약사들이 숙취해소음료를 개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술 권하는 우리나라에서 숙취해소는 탄탄한 수요층이 보장된 매력적인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이 음료들에 정말 숙취해소효능이 있는 것일까. 재미있는 사실은 음료에 ‘숙취해소’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고 광고하는 행위가 인정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0년 이전에는 효능을 검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에게 혼선을 주지 않기 위해 직접적인 단어사용을 금지했다.

합법적으로 숙취해소를 제품포장에 내걸고 처음 출시된 음료는 그래미가 개발한 ‘여명808’이다. 여명808은 개발사와 식약처(당시 식약청)간 소송으로 더 유명해진 제품이기도 하다.

1998년 그래미는 여명808을 ‘숙취해소용 천연차’로 특허 받아 출시했지만 식약청은 식품표시에 관한 기준을 근거로 숙취해소라는 표현 사용을 금지했다. 이에 그래미가 불응하자 식약청은 15건에 이르는 고소, 고발을 진행하며 판매와 수출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22조2항(발명가의 권리침해)과 23조1항(특허권 침해)에 따라 그래미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그래미는 식약청 단속과 규제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무려 11조4332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 이는 당시 서울시 예산인 약 10조8000억원보다도 많은 금액이며 역사상 최고액의 손해배상청구라는 점에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후 그래미는 국회의원들의 중재에 따라 소송을 자진취하한다.

결론적으로 숙취해소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엄청난 마케팅효과를 가져왔다. 2011년부터 숙취해소음료시장은 2000억원대를 넘어섰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고 마신 셈이다.

숙취해소음료에 숙취해소효능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시중에 나온 숙취해소음료의 성분들을 보면 헛개나무열매추출물, 아스파라긴산, 오리나무, 커큐민 등인데 알코올분해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단 100% 숙취를 해소시킬 수는 없고 사람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며 일정량 이상의 음주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숙취해소음료가 약이 아닌 식품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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