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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았으면”
“술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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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정석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중앙대광명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서정석 이사장은 “중독은 결국 뇌질환”이라며 “중독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중독환자를 살리면 세 집안(부모님, 당사자, 자녀)이 편안해집니다. 이를 한번 맛보고 나면 너무 뿌듯함을 느껴요.”

우리나라는 알코올, 약물, 도박, 인터넷 등 중독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개인과 그 가족은 물론 사회적 병폐가 심해지고 있다. 중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방부터 치료, 재활까지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정신중독의학회(이하 중독학회)는 중독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예방·치료에 대한 정책 마련을 위해 학술대회부터 연구지원, 중독전문가 육성 등에 힘써왔다. 제16대 중독학회 이사장으로 취임한 중앙대광명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서정석 교수를 만나 앞으로의 목표와 다짐을 들었다.

- 16대 이사장으로서 취임한 소감과 목표는.

중독학회는 여러 정신과학회 분과학회 중 유일하게 의사 외 직군과 협력하는 ‘다학제학회’이다. 중독문제는 의료인만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여러 직군이 모였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등 악재로 인해 재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임기 동안 가장 큰 목표는 외적인 규모보단 내실을 다지는 것이다. 본래 취지였던 다학제학회를 모토로 삼고 정신과 의사는 물론 다양한 직군을 아우르는 학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중독문제는.

가장 오래된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알코올중독에 대해 다시 한 번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때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대학병원에는 중독문제를 다루는 의사가 거의 없다. 중독환자에게는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아야 한다. 특히 알코올중독환자는 해독만 한 달가량 걸리고 상담부터 치료까지 약 12주나 소요된다. 대학병원 시스템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레지던트 수련과정에서 알코올중독을 가르치는 지도 전문의 역시 현저히 줄었다. 이 때문에 전문의들이 알코올중독환자를 거의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현장에 나가다 보니 환자를 보는 것에 겁을 내고 당황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회 차원에서 중독아카데미를 만들어 중독문제를 교육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 연수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관심도가 굉장히 높았다. 알코올중독은 중독문제의 근간이 될 수밖에 없다. 도박중독, 마약중독 등은 법적인 문제가 결부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알코올은 모든 중독과 연결고리가 있다.

- 중독을 왜 질병으로 인식해야 하는가.

중독을 논하기 전에 오용과 남용에 대해 먼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오용은 사회적 용어이고 남용은 의학적 진단명이다. 오남용을 혼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중독은 남용과 의존으로 나뉜다. 미국정신의학회의 DSM 분류에 따르면 ‘지난 12개월 중 술로 인해 가족들이나 주변인들에게 핀잔을 받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고 하면 남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중독진단기준은 터무니없이 역치가 낮다.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우리나라 사회인식 역시 남용을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남용은 양육권을 뺏기기까지 하는 큰 문제이다.

중독은 남용과 의존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술을 마시면 간이 나빠진다는 것은 대부분이 알고 있다. 반면 지금껏 만난 환자들 중 뇌가 나빠진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환자는 거의 없었다. 중독은 결국 뇌의 병이다. 중독상태가 지속되면 뇌세포가 파괴되고 뇌가 위축된다. 따라서 학회는 중독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 중독문제에 대한 대응전략, 특히 예방·재활은 어떻게 접근할 생각인가.

학술단체는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내야 한다. 예방에 대한 프로토콜을 만드는 것이 학회의 역할이다. 하지만 연구자가 점차 줄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를 확대하는 것이 1차 목표이다. 젊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돌리는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 재정적 지원부터 아카데미를 통한 젊은 연구자 육성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회에서 발간한 한국형 중독치료 지침서를 개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10여년이 넘게 개정되지 않아 최신화하고자 한다. 대외적으로는 다학제활동을 통해 정책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한다.

- 중독학회가 앞으로 추진할 연구나 정책과제는.

중독문제는 예방, 조기발견, 치료, 재발방지, 재활치료 등이 하나의 서클을 이뤄야 하지만 현재 각각의 단계가 따로 놀고 있다. 또 중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이기 때문에 콘트롤타워를 세우는 것 역시 중요하다. 콘트롤타워 없이 전담부서가 나뉘어 있다 보니 단계별 전략이 제대로 나오기 어려운 실정이다. 학회 차원에서 이러한 것들을 알리고 연구를 통해 근거를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또 다른 목표는 플랫폼을 만들어 단발성이 아닌 중장기적인 커리큘럼을 확립하는 것이다. 플랫폼 내에서 과학적인 근거가 축적되고 최신화되면 상황이 점차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젊은 연구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처음 중독을 전공했을 때 주변에서 하나같이 ‘중독은 죽어야 낫는 병’이라고 말했다. 중독을 전공하겠다고 하니 말리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암환자를 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독환자도 똑같다. 그동안 치료한 중독환자 중 지금까지 잘 지내는 분들이 계신다. 중독환자를 살리면 세 집안(부모님, 당사자, 자녀)이 편안해진다. 이를 한 번 맛보고 나면 너무 큰 뿌듯함을 느낀다. 후배들도 이를 느꼈으면 좋겠다.

중독환자는 상담부터 치료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재발도 잦아 강한 인내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술을 미워해야지, 사람을 미워해선 안 된다. 환자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중독학회 차원에서 계획 중인 캠페인활동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규범이 바뀌다 보니 그동안 대면으로 진행됐던 것들이 비대면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온라인 부분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장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것이 대학교 새내기 대상 교육이다. 신입생이 수강신청을 할 때 중독에 대한 교육을 받도록 연계한 적이 있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앞으로 콘텐츠를 더 다듬고 SNS나 블로그도 활성화하는 등 보다 체계적으로 정비해 나가고자 한다.

-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30년 전 처음 의사가 됐을 때 지금쯤이면 우리나라가 매우 정신적으로 건강한 나라가 돼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서 ‘좀 더 잘 사는 법’ ‘더 행복해지는 법’ 등을 얘기하고 있지 않을까 예상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때보다 정서적으로 어렵고 피폐한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예방 차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가 거의 없어서이다. ‘속이 안 좋아서 검진차원에서 왔어요’라고 하는 환자는 있지만 ‘40살이 됐으니 정신건강 한 번 체크하러 왔어요’라고 하는 환자는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바라는 것이 이것이다. “40살 됐으니 정신건강 한 번 체크해보려구요”라고 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지금도 어르신들이 건망증검사를 하러 오시면 꼭 얘기한다. “어르신, 큰일 아니구요. 70~80년 사시면서 정신건강 한 번 체크해 보신 적 없으시잖아요. 우리 그거 확인하려고 하는거예요.” 이렇게 말씀 드리면 덜 불안해하신다. ‘정신건강 체크하러 왔습니다’라는 말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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