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복지정책은 국민을 편안하게 만들지만 잘못된 정책은 국민의 세금만 축내기 마련입니다. 일단 한 번 만든 제도는 없애거나 축소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이에 본지는 ‘하나 마나 한 복지시범사업’이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시범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네 번째 주제는 ‘진료지원인력(PA) 관리·운영체계 시범사업’입니다. <편집자 주>
‘PA(Physician Assistant)’라고 불리는 진료보조인력은 캐나다, 미국 등 해외국가에서는 합법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다. 지난해 5월 서울대병원이 PA간호사를 ‘임상전담간호사(Clinical Practice Nurse, CPN)’로 대체, 양성화를 시도했고 최근 복지부가 PA관리·운영체계 시범사업을 시행한다고 발표하면서 PA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PA, 의료계 구조적 모순으로 탄생
의사의 의료행위를 지원하는 인력은 법으로 규정돼 있다. 간호사, 의료기사, 응급구조사 등이다. 이들은 의료행위를 직·간접적으로 수행할 수 있지만 독자적으로 이를 수행할 수 없다. 단 의사로부터 구체적․포괄적 업무지시를 받은 의료행위는 합법이다.
PA는 1960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됐다. 베트남전쟁 이후 일차진료를 담당하는 의사가 부족해진 것. 이에 일정한 교육을 통해 허용된 범위 내에서 진료보조 및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PA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PA는 궤가 다르다. 인구고령화에 의한 환자증가로 검사, 처치, 수술 등을 감당할 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의사의 인건비가 워낙 고액이다 보니 대체인력으로 PA를 만든 것이다.
여기에 2017년 전공의특별법과 외과기피현상으로 전공의가 부족한 외과에서 암암리에 PA를 확대해 운영했다. 실제로 병원간호사회의 ‘병원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12월말 기준 213개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PA간호사는 내과계 1315명(27.3%), 외과계 3499명(72.7%) 등 총 4814명이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해 10월부터 공청회를 개최, 올해 2월부터 PA운영 시범사업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행 의료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시범사업은 명백히 불법이며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소위 빅5병원 역시 시범사업 참여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참고로 현재 서울아산병원은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상급종합병원도 명확한 답을 하지 않은 상태다.
보건복지부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관은 “그간 의료현장에서 간호사 등 진료지원인력이 어느 범위까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혼란을 겪어왔다”며 “의사면허가 침해될 수 있다는 의료계의 우려를 알고 있는 만큼 시범사업을 통해 운영타당성을 검증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사고 시 책임소재 불분명
암암리에 불법으로 운영하는 PA를 공식화해 의료공백을 메우려는 복지부의 취지는 일정부분 이해가 가지만 국민건강이나 의료체계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실제로 시범사업은 ▲근본적 문제해결의 한계 ▲의료사고 시 책임소재 문제 ▲직종 간 갈등 문제 ▲필요이상의 역할 확대로 인한 부작용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기회 제한 ▲의사 상대가치점수 인하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시범사업 참여의료기관의 공개여부다. 복지부는 적극적인 병원참여를 위해 ‘비공개모집’을 진행했는데 병원공개여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 이는 국민의 알권리를 넘어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PA활동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복지부가 발표한 운영안을 살펴보면 아직까지도 PA활동의 명확한 구분이 없고 ‘진료보조’와 ‘지도·감독’ 등 두 가지로 구분, 운영위원회를 통해 결정한다.
게다가 국내에서 PA는 주로 흉부외과, 일반외과 등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분과에 분포돼 있어 정작 실용성이 있을까도 의문이다. 이는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와도 연관이 있다. 복지부는 시범사업 중 발생하는 의료사고는 진료지원인력이 속한 팀의 책임으로 간주한다고 발표했지만 구체적으로 의사의 책임인지 PA의 책임인지 명확하지 않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이번 시범사업은 의료법을 위반하고 불법치료를 함으로써 의료시스템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며 “정부가 정말 국민건강을 생각했다면 의사의 의료행위와 진료보조인력에 위임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작업을 선행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