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복지정책은 국민을 편안하게 만들지만 잘못된 정책은 국민의 세금만 축내기 마련입니다. 일단 한 번 만든 제도는 없애거나 축소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이에 헬스경향은 ‘하나 마나 한 복지시범사업’이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시범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한국형 상병수당 시범사업’입니다. <편집자 주>
7월부터 질병이나 부상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운 노동자들에게 소득상실을 보전하는 ‘한국형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시작된다. 110억원의 예산이 편성된 이 시범산업은 6개 시·군·구에 거주하는 취업자 260만명을 대상으로 3년간 정책효과를 확인한 뒤 2025년 하반기부터 공식사업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시범사업은 지급기준에 따라 ▲근로활동불가모형Ⅰ ▲근로활동불가모형Ⅱ ▲의료이용일수모형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이때 근로활동불가모형Ⅰ·Ⅱ는 입원 여부와 관계없이 일하지 못한 기간에 따라 상병수당을 지급한다. 가령 근로자가 대상포진에 걸려 일을 하지 못하면 입원 여부와 관계없이 근로상실 기간 동안 상병수당이 지급된다.
근로활동불가모형Ⅰ은 대기기간 7일, 1년 내 최대 90일까지 상병급여가 지급된다. 근로활동불가모형Ⅱ는 대기기간 14일, 1년 내 최대 120일까지 지급된다. 의료이용일수모형은 입원한 경우만 해당된다. 대기기간은 3일이며 보장기간은 1년 이내 최대 90일이다.
보건복지부 변성미 상병수당 태스크포스(TF)팀장은 ”상병수당은 현재 국민건강보험법에 부가급여로 실시할 수 있다고 정해져 있다“며 ”단 한국형 상병수당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고용보장 연계, 노동법적 접근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상병수당은 OECD 38개국 중 우리나라와 미국을 제외하면 모두 도입했다. 이번 시범사업이 잘 진행되면 질병으로 일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취약계층 등의 빈곤층 전락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평가다.
문제는 정부가 책정한 상병수당이 너무 낮다는 것. 정부는 이번 시범사업 대상 근로자에게 하루 4만3960원(2022년 최저임금의 60% 수준)을 지급한다. 하지만 이처럼 낮은 보장수준으로 과연 고용보험사각지대에 놓인 자영업자, 취약노동자 등이 걱정 없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상병수당을 도입한 OECD국가 대부분은 근로능력상실 이전소득의 60%를 지급하고 있으며 심지어 룩셈부르크와 칠레는 100%까지 보장한다. 또 해외 여러 국가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상병수당과 유급병가를 확대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번 시범사업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되려면 소득보장수준부터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기호운 정책부장은 “비정규직은 아파도 쉴 수 없고 쉬어서도 안 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상병수당 도입은 예방적 차원의 산업재해제도인 만큼 노동자가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계획을 재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