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달갑지만은 않은 ‘멜라닌’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 피부는 자외선을 받으면 본능적으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일단 피부가 자외선에 노출되면 뇌하수체는 멜라닌자극호르몬(α-MSH, β-MSH)을 분비한다. 이는 곧바로 멜라닌을 만드는 세포인 멜라노사이트(Melanocyte)의 특정수용체와 결합하고 갖가지 면역반응 및 염증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여기서부터 3단계로 설명할 필요가 있는데 먼저 1단계에서는 멜라노사이트가 분비하는 티로시나아제(Tyrosinase)라는 효소에 의해 멜라닌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2단계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멜라닌이 멜라노좀(Melanosomes)의 도움을 받아 멜라노사이트의 가장 외곽으로 옮겨진다. 끝으로 3단계에서는 멜라노사이트의 외곽돌기에서 흔히 각질세포라고 불리는 케라티노사이트(keratinocyte)의 표면으로 옮겨진다.
이는 결국 외관상 보기 싫은 검은 색소자국으로 표현되며 미백화장품은 이처럼 3단계에 걸쳐 이뤄지는 각 중간과정을 차단하거나 억제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미백화장품이란 이미 형성된 색소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색소침착을 예방하는 화장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색소세포는 그렇다 치더라도 피부건강에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부건강에는 매우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우리 피부의 멜라닌세포는 태양의 가시광선을 흡수해 햇볕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매우 중요한 ‘우산’역할을 함으로써 피부에 독성성분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 이는 상대적으로 멜라닌생성능력이 떨어지는 백인종이 황인종보다 피부암에 잘 걸리는 원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피부입장에서 봤을 때 멜라닌은 천연자외선차단제로서 고마운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미백화장품은 이처럼 외부공격으로부터 체내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단계를 인위적으로 억누르는 것이다.
게다가 미백억제물질이 멜라닌만 정확히 골라서 제지한다고 확신할 수도 없을뿐더러 피부입장에서는 정상세포의 활동을 방해하고 불편한 독(毒)을 일으키는 외부침입자임에 틀림없다.
뿐만 아니다. 즉각적이고 단시간에 하얀 피부를 만들어준다는 기적 같은 효과를 홍보하며 과산화수소, 하이드로퀴논, 산화납, 수은화합물 같은 사용금지원료를 이용한 화장품들 역시 소비자의 심리를 자극하며 유혹한다. 이들은 피부에 바르자마자 마법 같은 미백효과를 주지만 신장과 신경계통을 손상시키는 것은 물론 결국 체내에까지 축적되는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도 모자라 온갖 레이저, 화학적 필링 등을 통해 미백을 위한 목마름을 해소하는데 이는 피부를 더욱 예민하게 만들뿐더러 자외선에도 매우 취약한 상태로 만든다. 도를 넘어선 하얀 피부에 대한 열망이 화학자외선차단제와 미백화장품들로 하여금 번갈아 가며 우리 피부를 혹사시키고 피부장벽을 무너뜨리며 노화를 촉진시키는 것이다.
결국 판단과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다. 내가 독(毒)해져서 건강하게 살아남을 것인지, 독(毒)한 화장품의 힘으로 뽀얗고 하얀 피부를 탐할 것인지 말이다.
문득 창백한 서양모델이 등장하는 미백화장품광고가 눈에 들어 온다. 구릿빛 피부를 동경하며 태닝제품을 통해 피부를 검게 그을리는 그들은 오히려 미백화장품에 관심이 없다. 우리가 미백화장품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들처럼 하얗게 될 것이라는 착각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