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외상이나 질병이라도 정작 아픈 사람 본인은 그렇지가 않다. 당뇨가 단순히 혈당이 높아지는 질환이 아니라 인슐린분비량이 부족하거나 정상적이지 않아 각종 합병증으로 사망하게 된다는 것을 아는 ‘똑똑한 환자’라면 으레 ‘큰 병원’에서 진료 받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병원을 찾아가 진료 받을 수는 없다. 상급종합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진료의뢰서(요양급여의뢰서)’라는 것이 필요하다.
진료의뢰서는 1단계 요양기관인 동네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2단계 종합전문요양기관의 진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소견이 기록된 문서다. 병의 증상이 심각해 보다 전문적인 의료기관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1단계 요양기관에 있는 의사들이 의학적 소견을 바탕으로 2단계 요양기관에 환자상태를 살펴봐 달라고 의뢰하는 서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44개의 상급종합병원이 있으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학병원이 상급종합병원에 해당한다. 모든 대학병원이 상급종합병원은 아니며 병원의 의사 수, 진료과, 병상 수에 따라 종합병원인 곳도 있다.
정부가 이 제도를 시행하게 된 것은 병원 문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병원을 찾는다. 문제는 질병의 중증도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큰 병원을 고집한다는 점이다.
상급종합병원에 속한 의사들은 의학발전을 위한 연구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방에서 서울까지 긴 여정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연일 환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국내 주요 상급종합병원의 하루 외래환자는 1만명에 달한다.
흔히 수익률이 높은 병원을 두고 ‘수술공장’, 그 병원소속 의사들을 두고 ‘수술로봇’이라는 오명을 씌우는 것도 연구보다는 환자돌보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의 순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동네병원에서 기본적인 처치와 관리를 하고 암이나 뇌, 심장 등과 관련된 중증질환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하도록 하기 위해 진료의뢰서라는 중간과정을 둔 것이다. 당연히 진료비도 더 비싸다.
다만 응급환자, 분만, 혈우병환자, 치과, 가정의학과의 경우 진료의뢰서 없이 바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뒀다. 정부는 내년에 새로 상급종합병원을 지정하면서 예외환자의 범위를 더욱 축소시켜 진료의뢰서 발급절차를 강화할 계획이다.
환자가 무조건 큰 병원만을 고집하기보다 자신의 증상에 맞는 병원을 선택하고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른다면 상급종합병원 의사들은 의료발전을 위한 연구, 종합병원과 동네병원은 환자치료에 집중하는 의료선순환체계 마련이 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