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훈 원장의 사례로 본 재택의료] 도로를 배회하는 치매환자 이야기
[노동훈 원장의 사례로 본 재택의료] 도로를 배회하는 치매환자 이야기
  • 노동훈 편한자리의원 원장(대한재택의료학회 간행이사)ㅣ정리·장인선 기자 ([email protected])
  • 승인 2024.10.0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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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훈 편한자리의원 원장(대한재택의료학회 간행이사)

양주에서 방문진료를 마치고 의정부 편한자리의원으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신평화로 양주터널을 지나면 의정부성모병원으로 향하는 자금로터리가 나온다. 그런데 자금로터리 급경사 내리막 갓길에 노인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차가 막혀 천천히 내려갔기에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힘들어 보이는 얼굴, 목적없는 위태로운 걸음걸이가 보였다. 치매환자가 길을 잃고 무작정 걷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방문진료 시 의정부에 사는 아버지가 실종됐고 3일 후 종로에서 발견됐다는 사례를 들었다. 치매환자였고 보행도 불편한 편이라 밖에 다니는 것이 어려운 분이었다. 잠시 문이 열린 틈을 타 밖으로 나온 것 같다. 어떻게 종로까지 가셨는지 모르겠다. 경찰에서 연락이 왔는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길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이웃에서 신고했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철이라 열사병에 탈수까지 겹쳐 힘든 모습으로 귀가했다고 한다.

필자는 9년간 요양병원을 운영했고 치매환자가 사라졌던 경험이 있다. 의정부에서 포천을 넘어가는 축석고개 쪽에서 환자가 발견됐다. 의정부 요양원의 고령자가 천안논산 고속도로 갓길에서 발견된 적도 있었다. 치매환자의 다양한 배회 사례를 경험했기에 자금로터리에서 본 고령자가 치매환자라는 것을 단번에 파악했고 옆자리에 있던 강성희 간호사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즉시 출동하겠다고 했다.

치매는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 즉 어리석음이라는 뜻 두 개가 나오는 부정적인 단어이다. 영어 단어 디멘시아(Dementia)도 de는 down의 접두사, ment는 mental, ia는 병명에 사용되는 접미사다. 정신기능이 저하되는 질병이란 의미다. 노인성 치매는 정상적으로 생활하던 사람이 65세 이후 다양한 원인에 의해 뇌기능이 저하돼 이전에 비해 인지기능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치매 유병률은 연령에 따라 비례해 증가한다. 65세 기준으로 5세 증가할 때마다 2배씩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노인성 치매 증상은 인지기능 저하, 정신행동 증상, 신경학적 증상 및 신체적 증상으로 나눈다. 인지기능 저하로는 기억력, 언어능력, 시공간 파악 능력, 판단력, 일상생활 수행능력 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 정신행동 증상으로는 성격 변화, 무감동, 우울, 불안, 망상, 환각, 배회, 공격성 등이, 신경학적 증상으로는 운동 마비, 감각저하 등이 발생한다.

노인성 치매는 단일 질환이 아니라 여러 원인질환에 의해 노년기에 발생하는 치매를 총칭한다. 원인은 다양하며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가 많고 루이체 치매, 전측두엽 퇴행, 파킨슨병 등 다른 퇴행성질환들과 뇌수두증, 두부 외상, 뇌종양 등도 원인이 된다. 치매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알츠하이머병이 노인성 치매 원인의 50% 이상, 혈관성 치매가 20~30%를 차지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노년기 치매가 의심되면 정확한 진단을 통해 최대한 빨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억력 저하를 포함한 인지기능 저하가 있는지, 언제부터 어떤 양상으로 나타났는지 확인하고 신체검사와 신경학적 검사, 일상생활 수행능력, 혈액검사, 뇌영상 검사, 신경심리검사 등을 시행한다. 방문진료 시에는 치매 간이검사(K-MMSE & GDS)로 진단하고 약물을 처방한다.

노인성 치매는 다양한 경과를 보인다. 알츠하이머병이 원인인 경우 서서히 시작돼 8~10년에 걸쳐 진행된다. 경미한 기억장애부터 대화가 불가능하고 여러 신체증상이 나타나는 말기까지 다양한 경과를 보인다. 혈관성 치매는 증상이 급격히 시작되고 경과도 계단식으로 악화된다. 루이체 치매는 경직 증상이나 환시가 빈번하게 나타나며 전두측두엽 치매는 초기부터 성격이나 언어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알츠하이머병의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직 없지만 증상을 완화시키고 진행을 지연시키는 약물이 많이 사용된다. 혈관성 치매의 경우 고혈압, 당뇨, 고지질혈증, 비만, 흡연 등을 관리하며 항응고제와 혈액순환개선제 등을 통해 재발이나 악화를 방지한다. 정신행동증상의 치료도 중요한데 기억력 훈련, 인지재활 치료, 지남력 훈련, 작업치료 등 비약물적 치료와 함께 항정신병, 항우울증, 항불안, 수면제 등 다양한 정신과적 약물을 사용한다.

운전 중 인적이 드문 곳에 흐리멍덩한 얼굴로 목적 없이 걷는 노인이 있다면 대부분 치매환자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 경찰에 신고해 안전한 집으로 모시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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