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공불락(難攻不落). 췌장암에 흔히 따라붙는 수식어입니다. 워낙 몸 깊숙이 위치해 진단 자체가 어렵고 설령 치료해도 예후가 나쁜 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의학발전과 각 분야별 전문의들이 함께 치료하는 다학제진료에 힘입어 최근에는 수술이 불가능했던 환자도 수술 후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려대구로병원 췌장담도센터 다학제팀을 만났습니다. <편집자 주>
췌장암 1~2기는 수술이 가능하지만 3기에 이르면 매우 어려워진다. 특히 암세포가 복강동맥을 침범하면 과거에는 수술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르다. 선행항암요법(항암치료를 먼저 시행해 종양을 줄인 다음 수술 진행)이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수술이 어려운 췌장암환자도 생존기간을 한층 연장할 수 있게 된 것.
■당시 환자상태
명치 통증으로 동네병원을 찾은 61세 남성 이 모씨는 컴퓨터단층촬영(CT) 후 다수의 림프절전이를 동반한 췌장암이 의심돼 2022년 1월 고려대구로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은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자기공명영상(MRI)과 양전자단층촬영(PET-CT)을 추가로 진행했다. 최종 조직검사결과 복강동맥을 침범한 췌장암3기로 진단받았다.
■수술 불가능에서 ‘가능’한 환자로
고려대구로병원 췌장담도센터 다학제진료실. 이 씨의 치료법을 결정하기 위해 ▲소화기내과 ▲병리과 ▲종양내과 ▲영상의학과 ▲핵의학과 ▲간담췌외과 의료진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는 대동맥 근처 임파선까지 암이 퍼져 있어 수술이 어려운 상태였다. 하지만 의료진은 수술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췌장암의 항암치료효과가 과거보다 크게 향상된 만큼 선행항암요법을 시행, 결과에 따라 충분히 수술도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로써 3개월간의 선행항암치료 여정이 시작됐다.
■조직검사부터 수술, 사후관리까지 ‘착착’
▲소화기내과=항암치료를 위해서는 조직검사가 필수적이다. 종양이 췌장의 체부(몸통부분)에 위치해 검사하기 까다로웠지만 김효정 교수는 그간의 노하우로 초음파내시경을 활용, 문제없이 조직검사를 진행했다. 김효정 교수는 “초음파내시경을 활용하면 소화관에 인접한 장기에 가까이 접근해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며 “특히 일반 복부초음파검사로 발견하기 어려운 췌장의 종양에 접근하기 유리하다”고 말했다.
▲병리과=김백희 교수는 최근 병원에 도입된 디지털병리시스템을 통해 항암치료에 들어가는 시간을 크게 단축했다. 그는 “일일이 현미경으로 관찰해야 했던 조직을 슬라이드형태로 모니터에 띄워 한 번에 볼 수 있게 됐다”며 이 시스템의 장점을 설명했다.
▲종양내과=조직검사결과를 바탕으로 최적의 항암제를 결정한 오상철 교수. 그는 치료반응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총 4번의 항암치료를 안전하게 진행, 그 결과 주변 혈관 및 조직으로의 암 침범이 뚜렷하게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의료진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 사전준비에 들어갔다.
오상철 교수는 “기존 세포독성항암제의 치료효과가 크게 향상된 덕에 수술이 불가능했던 환자도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게 됐다”며 “현재 임상연구 중인 면역항암제와 표적항암제까지 도입되면 더욱 시너지효과가 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영상의학과·핵의학과=김정우 교수(영상의학과)와 조관형 교수(핵의학과)는 수술 사전준비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먼저 김정우 교수는 혈관조영술을 통해 혈관상태를 면밀히 관찰, 수술 가능여부를 사전에 파악했다. 또 조관형 교수는 PET-CT 촬영을 통해 원격전이 여부를 살폈다. 원격전이가 발견되면 수술이 불가능해서다. 다행히 복강동맥을 포함한 다량의 췌장절제가 가능하다고 최종 판단, 모두의 바람대로 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간담췌외과=복강동맥을 함께 자르는 고난이도수술이었지만 간담췌외과 의료진은 풍부한 임상경험과 노하우로 6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이 씨는 특별한 합병증 없이 10일 만에 퇴원했다. 이후 다학제팀은 꾸준히 그의 상태를 관찰, 추가 항암치료를 시행했으며 10개월 뒤 국소재발을 발견하고 신속하게 방사선치료를 실시, 현재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치료 중이다.
간담췌외과 김완준 교수는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를 가능하게 만들어 예상보다 생존기간을 훨씬 더 연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사례”라며 “수술 후에도 다학제진료를 꾸준히 시행한 덕에 재발을 조기에 발견, 치료방향을 빨리 결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만의 환자 아닌 ‘우리 모두’의 환자”
매주 화요일 12시 30분. 췌장담도센터 다학제팀은 정기회의를 위해 식당이 아닌 회의실로 모인다. 김재선 센터장은 “애초에 내 환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 모두’의 환자라는 마음으로 임하다 보니 점심시간에 모여도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회의 후에는 환자·보호자가 합류해 치료법을 설명하고 질의응답시간을 갖는다고. 간담췌외과 김완배 교수는 “이 시간을 통해 의료진에 대한 신뢰감은 물론 환자의 치료의지를 높일 수 있어 급한 수술이 없는 한 모두 자리를 지킨다”고 말했다.
끝으로 다학제팀은 “악명높기로 유명한 췌장암도 다학제진료를 통해 생존율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며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마시라”고 한목소리로 당부했다.
TIP. 고려대구로병원 췌장담도센터가 알려주는 췌장암 예방·관리법
1. 금연 : 흡연은 췌장암의 주요 위험요소로 담배만 끊어도 발생위험 크게 감소
2. 과음 자제 : 지나친 알코올섭취는 췌장암발병위험을 높임
3. 균형 잡힌 식단 유지 : 과일, 채소, 통곡물 고루 섭취, 적색육·가공육 섭취 줄이기
3. 만성질환 관리 : 췌장암발병위험 높이는 당뇨병, 만성췌장염 등 철저히 관리
4. 정기검진 : 위험요인, 가족력 있으면 정기적으로 복부CT 촬영